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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가을호 / POSTECH ESSAY / 에너지 변혁과 위험 관리

작성자
이정훈
조회수
113
작성일
2017-10-19
첨부파일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을 둘러싸고 환경단체들과 원자력계의 논쟁이 치열하다. 특히,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해서는 유래 없는 공론화 위원회까지 만들어지면서 그 논쟁의 영역이 안전 기술 및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안보 측면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필자는 물리학자로서 원자력 발전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전력 에너지 문제를 ‘위험 관리’ 및 ‘경계 조건’ 관점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물리학자들은 문제의 핵심 독립 변수들과 종속 변수들을 찾아내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일에 능숙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수학 모델의 경계 조건이 명확해야만 해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특히 같은 모델이라도 경계 조건이 달라지면 해도 달라진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전력 에너지 문제에서 핵심 변수와 경계 조건은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은 전력 에너지 문제란 무엇인가, 즉 정의에 대한 질문이다.) 단순한 모델을 지향하는 물리학의 전통(?)을 따라, 독립 변수를 전력 생산을 위한 1차 에너지자원들의 구성으로 두고 종속 변수를 전력 생산에 수반되는 위험도(risk)라고 하자. 이때 경계 조건 (다른 말로 제약 조건)은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 및 지정학적 조건이다.



먼저 경계 조건 중 하나인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를 먼저 살펴보자. 우리의 일상과 산업은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구조로 변한 지 오래이다. 70년대 이후로 수출 위주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하면서 대규모 산업 시설은 우리나라의 특징이 되었다. 반도체, 중화학, 철강, 자동차, 조선, 항만 시설 등은 좁은 면적에서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필자가 있는 포항시의 POSCO 제철소의 경우 평균 500MW 라는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반도체 공장들도 유사한 규모의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공장에서 전력 공급 차질은 대규모 시설 피해 및 금전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반도체 공장이나 철강 공장의 거대한 생산 시설을 눈으로 보면 실감할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 견학하기를 권한다.) 따라서 현재의 산업 구조에서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 공급은 필수이다. 두 번째 경계 조건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조건을 생각해 보자. 야간에 한반도를 보면 대한민국은 대륙에 붙어있는 반도국가가 아닌 ‘섬나라’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즉, 우리는 잉여 전력을 수출할 수도 수입할 수도 없는 ‘고립된 전력 공급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력 수급에 대한 자립적 관리가 필수적이다.



위와 같은 경계 조건 하에서 전력 생산을 위한 에너지 자원들, 즉 독립 변수들에 수반된 위험도 분석을 시작할 수 있다. 종합적인 위험도에 대한 수치 모델은 각종 발전소 사고 확률 및 사고 수습 비용, 발전소 건설 및 공해물질 배출 등으로 인한 환경 비용, 발전소 폐기 비용 등의 개별 위험도, 그리고 원료 공급 차질 등으로 인한 발전량 변동성에 따른 산업 피해 등을 함께 고려하여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델에는 원자력뿐만 아니라 태양광 등 신재생 발전원 및 에너지저장 시스템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모델의 포괄성 및 정확성뿐만 아니라 ‘위험도’에 대한 우리의 명확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기술도 완벽한 안전 또는 부작용, 즉 무사고 또는 일방적인 혜택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위험도’, 즉 ‘법적 규제’ 하에서 현대의 기술들을 (자동차, 비행기, 화학공장, 원자력발전 등) 사용하여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안전을 높이기 보다는 위험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전력 에너지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위와 같은 위험도 산출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하여 원자력 중대사고 확률이 아주 작더라도 그 피해 규모가 너무 크고 장기적임을 간접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위험도에 대한 명확한 인식 및 그것을 계량할 수 있게 만드는 수치 모델의 유용함은 부정할 수 없다. 왜냐면 수치 모델을 통하여 우리의 전력 수급 시스템의 위험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폭넓은 관점에서 다양한 전력수급 시나리오들을 시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사회적인 논의가 양 진영의 말싸움에서 탈피하여 위험도 분석 및 관리라는 건설적인 틀 안에서 재편되고 더 나아가 우리 현실에 맞는 에너지 변혁 전략들이 도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_윤건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