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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여름호 / POSTECH essay / 기계인간 터크

작성자
이정훈
조회수
206
작성일
2017-07-12
첨부파일
18세기 유럽, 볼프강 폰 켐펠렌이라는 헝가리 귀족은 체스를 두는 기계인간 '터크(Turk)'를 고안해 냈다. 터크는 검은 턱수염과 회색 눈에 터번을 두른, 마치 동양에서 온 마법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켐펠렌은 유럽 이곳저곳을 돌며 관객들에게 터크와 게임을 하게 했는데 웬만해서는 터크를 이길 수가 없었다. 터크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끌어 모았고, 켐펠렌은 터크와 함께 유럽 전역의 왕실을 방문했다. 지금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이야기는 아마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역사상 첫 사례가 아닐까 한다. 



사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생각하는 자동기계에 대한 꿈을 꾸어 왔다. 그리스 신화 속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는 자신의 일을 돕게 하기 위해 금으로 로봇을 만들었고 중세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는 인조인간을 만들어 내는 마법 호문쿨루스를 연마했다고 전해진다. 신학자 룰은 이성적 추론을 수행하는 기계를 통해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고, 이 생각은 파스칼과 라이프니츠의 기계적 계산기, 그리고 베비지의 해석기관으로 이어졌다. 튜링이 보편적 계산 기계를 제안한 뒤, 1950년대에 계산과 논리의 본성에 대한 현대적 연구가 시작되자 인공지능은 단숨에 진지한 철학적 주제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오류를 보정하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조력자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생각하는 자동기계들이 인간의 정체성과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최근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기계 알파고가 세계 정상의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기면서 인공지능이 역사상 어느 때보다 경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나는 다시금 떠오르는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라는 이 해묵은 개념 앞에서 묘하게 엇갈리는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이제 기계가 인간을 이겨요"라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을 때면, 웃으며 짓궂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이겼다면, 기계가 인간을 이긴 걸까요, 아니면 인간이 기계를 이긴 걸까요?"  

우리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에 대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앞서고 인간의 노동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거라는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종종 불필요한 논의에 휩쓸리곤 한다. 그런 일들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인공지능이라는 기계에 위축되지 않고 그 그림자 뒤에 실재하는 인간의 창조적인 지성과 능력에 더 큰 찬사를 보낼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기계' 알파고가 '인간' 이세돌을 이긴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연구에 골몰해 온 연구자들과 대학원생들, 그리고 회사에서 피땀 흘린 엔지니어들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이긴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과학이 이 세계의 현상에 대한, 개연성 있고 체계적인 설명을 찾으려는 노력이라면, 컴퓨터 공학은 강력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의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과학의 발전을 선도하는 학문 분야가 되었다. 특히, 이 세계의 가장 흥미로운 현상인 '지능'을 대상으로 하는 인공지능 분야는 지능과 지성의 본질에 관한 궁극적 질문에 가장 적절한 해답을 줄 수 있는 분야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라 나는 믿는다. 연구 자체의 즐거움 외에, 내게 인공지능 분야를 연구하며 얻는 가장 큰 이득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지능의 위대함과 그 독특함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특정 문제를 풀기 위해 인간에 의해 사려 깊게 설계되고 학습된다. 그 특정한 문제에 필요한 목적함수를 설정하고 모델을 설계하며 학습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은 고스란히 창의적인 인간 지능의 몫으로 남아있다. 이 과정 가운데 우리는 필연적으로 계산과 지능 사이의 경계를 확인하고 고찰한다. 인공지능 연구의 현실을 볼 때, 기계는 보편적인 이성의 도구가 될 수 없다는 데카르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것은 결코 인공지능에 대한 회의론이 아니다. 나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낙관한다. 만일 인간 지능이 본질적으로 인공지능을 넘어선다면,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의 손에 의해 더 발전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또한 인공지능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 지능도 함께 더 확장하고 앞서가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 분야는 계속해서 중요한 분야로 남아 인공지능으로 대체 불가능한 인간의 필요성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의 독특성을 알아가고 또 그것을 발전시켜나가는 길의 동반자로서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유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와 승승장구하던 터크의 비밀은 데뷔한지 오랜 세월이 지난 185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밝혀진다. 터크는 스스로 생각해서 체스를 둔 것이 아니라, 빈틈없이 꾸며진 기계 내부에 체스전문가가 숨어 조종했던 것이다. 수십 년간 지속되었던 소위 '인간과 기계의 대결' 첫 장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과연, 터크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 사실 앞에 눈살을 찌푸렸을까 아니면 미소를 지었을까?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터크는 21세기 현대적인 모습으로 부활해 인터넷에 자리 잡았다. 아마존의 온라인 클라우드소싱 서비스 '기계인간 터크(Amazon Mechanical Turk)'는 사용자의 의뢰에 따라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작업들을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도록 온라인상으로 일꾼들을 모집하고 연결해 준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이 인공지능의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데이터들은 상당 부분 이곳을 통하여 만들어 졌다. 그리고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한 기계인간 터크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글_조민수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교수